파라바이크는 묶는 책이 아니라 접는 책입니다. 두꺼운 샨족의 뽕나무 종이에 쌀 전분으로 갠 숯가루를 겹겹이 발라 두고, 흰색 활석 크레용으로 글씨를 쓰면 다시 지울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쓴 자국은 닦여 나가고, 표면은 다시 검게 칠해지며, 같은 페이지가 또 한 번 쓰입니다. 거기 남는 것은 팔림프세스트, 즉 거듭 덧쓴 흔적입니다. 검댕 바탕, 분필 같은 선, 그리고 다 지우지 못한 것들의 회색 잔상이 겹쳐 있습니다.
이 시스템은 그 실물을 문자 그대로 읽어 냅니다. 페이지 색은 따뜻한 숯빛이며, 결코 순검정이 되지 않습니다. 글자는 잉크가 아니라 크레용으로 표현됩니다. 패널은 두루마리처럼 아래로 쌓이는 대신 접힌 자국을 따라 옆으로 나아갑니다. 금색, 주홍색, 거울유리는 오직 옻칠한 표지에서만 등장하며, 그 양도 아주 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