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1년, 베네치아. 알두스 마누티우스는 그때까지 활자로는 누구도 본 적 없는 글자로 베르길리우스를 인쇄했습니다 — 프란체스코 그리포가 새긴, 소문자만으로 이루어진 좁은 필기체풍 이탤릭(칸첼레레스카체)을 직립한 로마체 대문자와 나란히 배치한 것입니다.
그 동기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절약이었습니다. 촘촘히 짜인 글자 덕분에 고전 텍스트가 손바닥만 한 팔절판에 들어갔고, 책은 독서대를 떠나 외투 주머니 속으로 옮겨갔습니다. 평범한 라그지, 삽화 없음, 장식된 첫 글자 없음, 소박한 여백. 이 디자인 전체가 말하는 주장은, 좋은 텍스트에는 더할 것이 아무것도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